가을

2024. 10. 11. 09:23l'ecrit/le journal

어디로 가는것인지 알수 없다고 생각한 즈음, 연락이 왔다. 학회 발표와 저널 그리고 잡오픈 소식. 감사할 일이다. 감사라는 마음을 잊어버린지 오래되었지만 그야말로 감사할 일이다. 그만두지는 말라는 뜻인가. 다음주까지 Abstract를 내라는데, 그 다섯줄 쓰는게 버겁다.

세상에 환멸이 든다. 그 불이 자주 켜지지 않기를 바라는데, 요즘 들어 깜빡깜빡 자주 불이 들어온다. 전국민마음투자지원사업때문에 사회복지센터를 방문해 검진표를 작성했는데, 떠나자 급히 전화가 와서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은적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검진표에 작성한 우울 수치가 지나치게 높았겠지. 상담을 받으며 상태가 좋아졌어도 우울증은 여전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나와 함께하고 있다. 스스로에 대한 수치감,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과 실망감, 허탈함.. 사람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알면서도 당하는 스스로가 바보같고 허탈해 며칠간은 당과 알콜로 폭식을 했다. 꾸역꾸역 욱여넣다가 다 게워내고 말았지만 지난 주말부터 일주일간 내내 폭식과 과도한 운동을 반복했다. 상담사가 경고했던 자해행위. 그러나 멈추지 못한다. 이렇게라도 뱃속에 욱여넣지 않으면 공허함과 외로움과 절망감에 죽고 싶어지니까. 잠들고 싶지만 잠들지 못하고, 낮에는 웅크려 울다가 잠에 들었다. 바라는게 많아지면 그만큼 실망만 커지는 것을, 여러모로 어리석은 자신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어리석게 느끼게 했던 얼굴들을 보면서 내 실망이 부당한지를 곰곰이 가늠해본다. 내가 너무 많은 것들을 바랐나. 제국의 do ut des를 버리고, 이타주의를 지향해야 한다고 가르쳐왔지. 네가 내게 주기 때문에 그만큼을 주는것이 아니라, 돌려줄 능력과 자격과 가치가 없어도 네게 주겠다는 일방적 이타주의를 지향하라고 가르쳐왔다. 선한 마음을 이용하는 이기주의자들은 이타주의의 논리마저도 뒤집어 제 배를 채운다. 너는 당연히 주는 사람이니까, 너희는 당연히 주라고 가르치니까 당연히 받아야지.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내놔. 내가 돌려줄 걸 왜 기대해? 내가 달라고 했어? 늬들은 당연히 주고 기대없이 주라고 가르친다며. 더 내놔. 이타주의의 중심에는 자발성이 있다. 주는 사람이 줄 대상과 항목과 정도 등의 조건을 자발적으로 자의적으로 선택해서 주는 것이다. 받는 자에게는 받을 자격이 없었으므로, 요구할 자격 또한 있을리 없다. 네가 가진 것을 더 내놓고 내게는 아무것도 바라지 말라는 이기주의자들의 주장은 이기적이기에 앞서 궤변론이기에 더 질이 나쁘다. 타자의 세계관을 왜곡하여 해석하고 그것을 착취에 사용하는, 제국에서도 사기꾼이라고 처형되어 마땅할 것들. 돌려받을 기대를 버리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라고. 그 모든 결심은 주는 입장에서 결정할 일이지, 받는 입장에서 요구할 주제가 못되는 사안이다.

어린시절부터 나한테 빚이라도 맡겨놨냐, 너한테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자격을 증명하라고 평생을 시달리며, 남의 아들들을 챙기고 남는 빵부스러기를 조롱하듯이 던지면 그것을 먹고 생존했으면서 왜 남들에게는 그것을 요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그저 내가 받고 싶었던 사랑을 준 것일 뿐이었다. 남에게 주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 사랑을. 나를 위해서 이기주의자가 되어, 이기주의자들에게 모욕과 수모를 주는 것이 더 유의미했을 것을. 지나간 시간들을 곰곰이 돌아보며 생각했다. 내가 이기주의자였던 적도 더러 있고, 이기주의자들에게 착취당한 적도 많이 있다. 미안함보다는 분노가 많으나 그들이 정말 착취에 성공했는지 물어본다면 그들도 결국 댓가를 치러야 했다. 내가 했던 가장 지나친 기대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했다. 역시, 사람이기를 기대했던 점이다. 아무런 의미없는, 정물로 이성적인 사고를 할수 없이 배설과 식욕이 전부인 짐승으로 취급하면 될것을. 

제주도 여행을 예약했다. 여름만 해도 아름다운 풍경을 자유롭게 누린 여행이었는데, 누군가를 향한 질투심이나 소외감 실망감 환멸이 들때 도피처럼 떠나곤 했던 그 병증이 다시 도져 홧김에 예약했다. 따라서 왜 가는지, 무엇을 위해 가는지 아무런 것도 설명할수 없는 여행. 좋았던 것은 좋았던 대로 두고 이 마음의 파도가 지나가고 난 다음 가는게 맞지 않을까.. 그러나 예약을 했다. 겨울의 제주도는 황량하고, 강릉은 조금 지겹고, 부산은 정이 안가서 지금, 제주도여야 한다고. 붉고 선명한 이파리들이 서럽게 파도치던 맑은날의 1100고지를 가야한다고. 

죽으면 이 모든것이 끝나고 편안해진다고. 너무나도 피곤해서 쉬고 싶다고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그 생각까지 이르기 전에 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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