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8. 04:34ㆍvoyage/Seoul
광화문점 런치 방문. 긴 여정의 완주를 자축하러 갔다.
옆자리 누군가가 여기가 파인다이닝은 아닌가? 하는데 셰프가 파인다이닝 맞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시작. 아 왜.... 뭣이 중헌디.... 갤러거 필렛미뇽 런치가 5x something이었던 것 같은데, 특히 점심에 5.5이면 충분히 비싼 식사라는 생각을 한다. 엔트리니 파인다이닝이니 아니니, 식사에 굳이 등급을 붙여 서열을 나누는게 뭔가 이질적이라는 생각. 음식과 서비스의 질에 기반해 탄생한 평가가, 도리어 음식과 서비스를 잡아먹는 것을 보는 기분이다.
사진을 찍지 않아 순서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차완무시, 흰살생선튀김, 광어, 참돔, 엔가와, 학꽁치, 전갱이, 방어, 참치뱃살, 아귀간, 적신, 고등어봉초밥, 복어 이리, 후토마끼, 장어, 계란푸딩, 한라봉샤베트로 마무리했던듯. 구성 매우 만족스럽다. 샤리가 약간 말랐나? 싶을 정도로 드라이한데 입에 넣으면 알알이 풀어지면서 초의 향이 세게 덮친다. 흑초 쓰시는지 향이 좀 묵직하고, 샤리 간도 세다. 재료들도 저마다 자기 주장이 강해서 뭔가 계속 음식이 강강강으로 때리는, 패기넘치는 인상..... 맥주든 샴페인이든 반주를 권하는 음식들인데, 뒤로 갈수록 반주가 더욱 간절해진다.
흰살 생선들은 무난한 재료에 다시마나 파 등으로 변주를 줬는데 무난했고, 전갱이는 냄새가 우나기는 가시가 조금 거슬리는 느낌. 후토마키는 원래 좋아하지 않아 그런지 그냥 저냥..
반면 오도로, 안키모, 절인 아카미, 사바보우가 매우 좋았다. 아카미는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부위인데, 워낙 기대가 없었어서 그랬는지 예상외로 맛있게 먹었다. 오도로는 와사비 많이 넣었다고 그러시는데 너무 맵지 않고 적당히 기름기를 잡아주는데다, 소금이 스파이스처럼 따끔 입안을 쏘고 풍미를 확 올려주는게 좋았다. 안키모도 따뜻하고 크리미한 식감에 풍미가 매우 좋았는데, 살짝 단맛이 있었다. 하지만 하나만 딱 꼽으라면 최고의 메뉴는 고등어봉초밥...부드러운 식감에 달큼한듯 새콤한듯 짭짤한듯 어우러지는 간의 균형과 따라오는 풍미가 인상적이다. 여기 다시 간다면 그건 사바보우때문일것... 교꾸도 푸딩처럼 보들보들 탄력있게 잘 됐는데, 다 먹고 나서 한라봉 샤베트의 제스트가 입에 남는건 좀 찝찝하다. 얼음도 과육도 좀더 입자를 곱게 갈면 어떨까.
공간이 넓어서 편안한건 좋고, 가방을 창가에 두라고 하는 건 좀 미스인 듯. 아직 오픈한지가 얼마 안되어 그런지 키친 스탭들하고 합이 안맞는다고 해야하나 기합이 안맞는다고 해야하나 약간 부산한 느낌이다. 스탭들 중엔 갓 대학 졸업한 것 같은 분들도 있고, 어리버리한 분들 두리번두리번 손님들 구경하는 분들... 스탭들은 원래 활기찬 업장을 지향하는데 유독 내가 간 타임 손님들과 합이 안맞았던건지도 모르겠다. 이런곳에서 단골되면 서로 주거니 받거니 재밌을것 같기도 하고. 남들 다 재밌는데 혼자 끝까지 고독한 미식가 찍고 있을것 같기도 하고.
아버님께선 기왕 나가는거 화끈하게 쓰고 오지 그랬냐 하셨으나, 나같은 막입으로선 이만큼도 충분히 호사롭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점심이었다. 맛있었고, 스페셜티가 있고, 친절했고, 쾌적했고, 식사후 행복했고, 다음에 또 가고 싶으면 그곳이 파인 다이닝이지. 좋은 시간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