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8. 01:14ㆍvoyage/Atlanta
숙소를 옮기고 나니 기침과 열이 나는게 아무래도 독감이 옮았지 싶었다. 하루종일 소득없이 헤매다가 늦은 오후 집에 와서 밥을 먹고, 한국에서 가져온 약이 있어서 먹으니 기절하듯 잠이 쏟아졌다. 그때가 5시쯤 되었는데 문득 깨보니 밤 10시. E에게서 문자가 와있어 네시간 가량 통화를 했다. 좋은 얘기, 힘든 얘기, 격려와 위로로 점철된 이야기들. 삶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왜 나는 어느 곳에서도 안정을 찾지 못하는지. 쉽게 갈걸 그랬지. 그래도 힘내자. 무엇을 위해서였을지 모르는 진정성때문에 이 고생을 하지만. 그걸 누군가는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런지 모르지만. 터널의 어느 출구로 나가면 좋을지 나가는게 좋은지조차 도대체 모르겠지만. 어느 날인가에는 끝이 있겠지.
새벽 두시 조금 넘어 통화를 끊고 약을 하나 더 먹고 잠이 들었는데 다섯시 반무렵부터 집에서 전화가 왔다. 바깥사돈어른이 행사때문에 서울에 올라오셨는데 아빠도 가시는 터라 두분이 하루종일 함께 행사도 갔다가 시내에 볼일도 같이 다녀오시고 저녁식사는 집에서 회 주문하고 고기 구워서 함께 하셨다고.. 아빠랑 두분이서 행사 끝나고 종로 오피스텔 재계약하는데까지 같이 가셨다가(아니거긴왜...) 광장시장 구경도 같이 하셨다는데(아니거긴또어쩌다....).. 무슨 사촌간이신지.. 사돈지간에 원래 다 이렇게 하던가. 바깥사돈어른 성품이 좋으셔서 괜찮으신것 같기는 한데, 약간 들으면서 황당하고 몸이 아파 그런지 원래 어떻게 하는거더라 판단이 잘 안선다. 아니 동생네가 하루 반차라도 내고 모셔야 하는거 아닌가 원래.. 동생네는 저녁 차려놓으니 와서 식사 같이 하며 그냥 간단히 드셔도 되는데 너무 무리하셨다고 화를 냈다한다. 아니 그러니까 어른들이 마음쓰시기 전에 먼저 동네 중식당이라도 예약을 하지, 엄마 고생하도록 마지막까지 가만히 있다가 왜 안하느니만 못한 말을 하고 있어.. 어른이야 오실수도 있고 한데 내가 꼰대인지, 동생네가 분별력이 없는지, 우리부모님이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결국 통화 끊고 나니 새벽 7시.. 잠은 다잤다.
요즘 이상하게 그림보다는 조각상들에 마음이 가고, 그들의 마음이 궁금하다. 절박하게 이삭을 줍느라 그런척,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깨에서 옷이 미끄러진척 가슴을 드러내며 남자를 유혹하는 룻의 표정. 승전한 아버지를 맞이하러 누구보다도 먼저 달려나왔다가 자신이 죽게 생긴것을 알고 자기 손에 들린 탬버린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입다의 딸. 상자에 담긴 것을 열 것인지 말것인지를 고민하는 판도라. 조각상들을 들여다보며 엉뚱한 생각들을 하다가 로댕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 들렀다.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키스 장면이다. 남자의 자세는 소심하다 싶을정도로 조심스럽다. 나체의 연인을 완전히 끌어안는 것은 커녕 허벅지에 채 손도 제대로 대지 못하고 연인의 키스를 받고 있다. 반면 여자는 한쪽 손으로는 남자의 뒷목을 자신의 얼굴쪽으로 끌어당기고 반대편 팔은 굽혀 남자의 앉은 품에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안겨있다. 크게 기울어져있는 얼굴과 흐트러져 가슴이 드러나는 자세는 여자의 절박함 그리고 적극성을 보여준다.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어떻게든 자신이 사랑하여 선택한 연인의 품에서 진정한 키스를 하고자 하는 진취성. 지옥에 떨어진다해도 연인을 놓지 않는 절박함.
흔히 불륜커플로 단정되는 이들은 단테의 극에서 본래 사기결혼의 피해자들이기도 하다. 야곱이 신부 바꿔치기를 당했듯이, 프란체스카는 아버지 귀도의 속임수때문에 맞선 상대로 만나 사랑에 빠졌던 연인 파올로가 아닌 그 형 지오반니와 강제로 결혼한다. 남성의 일부다처제와 달리, 여성의 일처다부제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 프란체스카는 결국 자신의 본래 연인과 관계를 지속하기를 선택하고, 불륜에 분노한 지오반니에 의해 살해된다. 사기결혼의 피해자와 가해자는 불륜으로 인해 그 관계가 뒤바뀌고, 살해로 인해 그 관계는 한번 더 뒤바뀐다. 불륜을 저지른 프란체스카와 파올라 뿐 아니라 살인을 저지른 지오반니마저도 지옥을 피할수 없었을 결말. 시작도 하지 말았어야 할 사기 결혼이었다.
혹자는 두 사람이 욕정으로 인해 지옥에 떨어진 것이라고 하지만.. 내게 있어 프란체스카는 욕정에 눈이 먼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 선택에 충실할 뿐이다. 아버지까지도 프란체스카가 원하는 것을 묻지도, 그녀의 마음이 무엇인지도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그녀를 속이고 이용하는 데에만 골몰하지만 그녀는 수동적인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역학관계의 피해자로 남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지옥에 떨어지는것까지도 감수했다. 그 바랐던것이 한낱 사람의 온기와 결국엔 함께 하지 못해 더 안타까울 순간적인 마주침 뿐이더라도, 주저함 없이.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입맞춤을 보고있는 기분이었다. 불륜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보면, 두 사람이 엉켜있는 조각상에선 그저 애틋함과 그리움만 느껴질 뿐이다. 마음속 강단과는 다른 모양으로, 연인의 단단한 품에 아련하고 연약하게 안겨있는 프란체스카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부질없이 흩어질 것이면서도, 진짜라면 목숨도 걸 수 있지. 사랑을 찾는 사람들은 언제나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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