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2026. 1. 23. 22:22ㆍl'ecrit/le journal

조카는 내게 웃음이 헤프다. 반절쯤은 제 엄마와 나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인듯하고, 반절쯤은 아직 옹알이도 못하는 자신의 요구를 가장 잘 알아들어주는 사람이기 때문인듯 하다. 제 엄마는 알아들어도 들어주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고, 아빠는 잘 없고, 할아버지는 자기 흥에 들떠 들고 흔들기 바빠 자기가 무슨 요구를 하는지 관심도 없고, 할머니는 팔이 아파 많이 들어주지 못한다. 이모는 그래도 타율이 좋아 효율적으로 써먹는 중인듯 하다.
치발기 하나 손목에 끼워줘서, 안아줘서, 거울 보여줘서 웃어주는 애를 보고 있노라면 사랑을 주는 기쁨이 이런걸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 내 마음이 따뜻했던 날들이 있다. 그렇게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날들도 있다. 여전히 마음 속에서 도저히 포기가 안되는 소망이다. 낮에도 하릴없이 자산가 시민권자와 결혼해서 미국으로 가는거 아니냐 인정만 잘 해주면 간이고 쓸개고 다 갖다줄텐데 그럴 사람 많은데 왜 안하시냐는 농담을 듣다가 그 사람을 생각했다. 너에게는 나의 무엇이 그렇게 부족했을까. 내 그릇은 그정도밖에 되지 않았나. 바깥에 첫눈이 내리고 있다. 이번 겨울 처음 내린 것은 아니지만 내리는 것을 처음 보았으니 첫눈이라고 말하고 싶다. 같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 그 눈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어디까지 이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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