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26. 23:12ㆍl'ecrit/le journal
It's funny and it's ironic that only I feel that way
I promise 'em that you're different and everyone makes mistakes
But just don't
Heartbreak is one thing, my ego's another
I beg you, don't embarrass me, motherfucker, oh
Please, please, please
바닥의 바닥의 바닥을 보게 되더니 어디가 끝인지, 여기가 끝이 아닌게 보여 허탈하고 아득했다.
자라온 환경이나 문화의 차이라고 스스로 세뇌해왔던 차이의 실상이 너무 커서 힘들었다.
앞뒤가리지 않고 기분나쁘면 화부터 내고 보는 우악스러움,
남의 잘못에는 칼을 들이대면서, 자신의 잘못은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붙이며 사과하지 않는 억셈,
지저분하고 경계가 흐린 사생활이야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봐야 할까.
경계를 넘나들면서 혼자 그물을 펼쳐도 내가 중심을 잡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통화에 다짜고짜 화를 내는것을 보며 그야말로 편하게 너무 편하다못해 쉽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봤다.
한동안 정말 저 노래 가사같은 마음이었는데, 그나마도 사랑을 하니 저런 애원이라도 한다.
난 신뢰도 사랑도 없구나. 나야말로 신뢰도 사랑도 없구나.
놓으면 되지. 내려놓으면 된다. 빠르게 납득하게 된다.
마켓으로 직행해서 와인 한병 반을 비우고 호텔에 체크인했다.
밤새 통곡한건
결국 책임도 안 질거 말만 청산유수로 늘어놓으며 소모적인 힘자랑이나 하고 자빠진 일터의 개진상들이 죽이고 싶어서일까, 그 연세에 몇십억단위 일을 나까지 끌어들여 또 벌이려는 아버지 때문일까, 남편자식두고 반포살며 제 남편 재산 자랑에 바쁘고 자기들 유학보내달라는 여동생의 당당함과 뻔뻔함이 부러워서일까, 부친과 여동생이 어떻든 화목한 관계를 강요하며 희생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철없음과 이기적임이 화가 나서일까,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무엇 하나 내 것이라고 부를 것이 없는 스스로의 처지가 무능력해보여서인가, 이나이에 머릿속이 빤히 들여다보여 웃음이 나올 지경인 년놈들의 사랑놀음에 이용당하는 처지가 한심스러워서일까, 인간으로 친구로 동료로 선배로 그렇게 사랑했는데 어설픈 바람으로 한 방에 다 날린 누군가가 원망스러워서인가
그냥 살아있는게 원망인가
술 먹고 차도로 뛰어들고 싶다가도, 애매하게 등뼈나 부러지면 죽지도 못하고 안뛰어드느니만 못해서 못하고 있단 말에 센터장님은 죽어야되겠다 싶을때 말해줄테니까 그때까진 좀 참아보라고 했다. 무슨 힘으로? 주님은 나를 버리신듯하고, 다른 주님의 힘을 빌어서라도 살고 싶은데 다들 나를 버리는 것 같은 이 시간에, 무슨 참을 힘이 있지? 요즘 나는 죽지못해서 산다는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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