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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rit/le journal

길 나서기

떠나기 직전까지도 1박 2일을 할 것인가 2박 3일을 할 것인가 하다가 2박 3일같은 1박 2일을 다녀오기로(....). 강남역에서 출발하는 셔틀을 타려고 예약해두었는데, 간밤에 눈이 많이 와서 대관령에서 기어가는 차들을 TV에서 보고 기차 예약했다. 3시에 양양 들어가서 할 일도 없었는데 잘 됐지 뭐. 핫스팟이라는 군데군데를 좀 기웃대볼까.

 

우리집에서 가기는 위치가 좀 먼 편인데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세 번째 찾아가는 카페에서 여행 시작. 이라봐야 기차 기다리면서 한 시간 가량 그랜트 프로포절 수정했다. 오픈하자마자 간 셈이 되었는데 벌써 손님들이 와서 사진을 찍는 중.. 할미는 거울앞에서 백장씩 찍는 MZ 남학생들을 보면 낯설고 그렇다. 남친이 여친 사진 백장 찍어주는건 많이 봤는데 여친이 남친 백장 찍어주는 건 또 오랜만에 보네........  

 

도대체 왜 역에서 헤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좀 헤맸다. 동편 끝 통로에선 3번 플랫폼에 내려갈 수 없는 것이었구나? 시간이 좀 여유있게 나와서 다행이다. 서울역에서 갈아타고 강릉으로 가는데 마침 강릉 여행 특집호가 반겨준다. KTX승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행잡지 치고는 대중교통 접근성이 없는 스팟들이지만. 

 

지하철을 타고 들어오며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서울의 인상이 있다. 큰 강과 높은 산과 도도하게 선 타워와 휘황찬란한 스카이스크래퍼들. 

 

서울역은 늘 복잡하다. 점심을 먹기엔 시간이 없고 그냥 가면 배가 고플 것 같아서 편의점에서 감동란을 샀는데 정말 정말 맛있었다. 문득 기시감이 들어 손을 내려다보니 한손엔 박카스, 다른 한 손엔 삶은 계란.. 70년대인가. 클래식이 클래식인 데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손을 씻고 나오는 길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길래 가봤는데 어디서 많이 보던 캐릭터가 한복을 입고 서있다. 난 할미가 얘가 누군지는 당연히 모르지. 무심코 찍다가 보니 반대편에 어느 아주머니께서 아주 깜찍한 포즈를 취하고 계셨다. 곰인형 반대편도 모르는 삶의 어느 코너를 계획한다고 그랬을까. 부질없음을, 아니 그것이 나를 지치게 했음을 생각했다. 

길 위에서 나는 내가 도저히 모르던 자신을 만나기도 하고, 나와 꼭 닮은 내 삶을 보기도 한다. 위로가 필요한 만큼 스스로를 견책하고 또 위로받는다. 기대와 예상 계획처럼 되지 않았으나, 그러나 또 살아진다는 것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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