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19. 19:58ㆍvoyage/Seoul
어느새 연말이다. 도대체 왜인지 모르겠으나 11월은 기억이 없는데 정신차려보니 벌써 크리스마스가 오고 있었다.
파리 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 공연. 아버지는 너무너무 감동받으셨다고.. 작년 서커스보다 좋으셨다 한다. 29일 뮤지컬은 보지도 않고 올해 최고의 공연이라고 호언장담하시는데.. 아니 왜인지 모르겠으나 취향 존중합니다.
이런저런 모임이 있어 사람들을 만나며 느끼는거지만, 날이 갈수록 누구와 먹느냐가 더 중요하지 얼마나 맛있는 업장이냐는 하등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미슐랭 스타급이어도 같이 앉은 사람이 불편하면 돌을 씹는것 같고, 시장 국밥집이어도 동행이 좋은 사람이면 돼지 냄새나는 순대국밥도 세상 다시 없을 진미가 된다. 오랜만에 미국 혹은 프랑스에 나온듯한 기분이 들었으나.. 오가는 대화가 즐거울리 없으니 감상도 순간적이다.
이를테면 이런 날. 한시간 반 식사하는게 이렇게 고역일 줄은. 그나저나 여긴 본점보다 분점 수준이 낫다. 엔트리급에 뭘 바라냐면서도.. 본점보다 분점이 나은게 신기하다.
크리스마스가 왔다. 작년보다 마음 상태는 좀 더 낫고, 잔고 상태는 고만고만하고, 성과는 자잘하게 조금 더 있고, 네트워크는 일을 제외한 모든 것이 거의 전멸했다. 친구 카테고리가 통째로 일 카테고리로 옮겨갔으니. 나를 친구로 부르는 이는 있으나 내가 친구라 생각하는 이는 없는 시간을 지난다. 내년 크리스마스는 좀 나으려나. 스스로의 한결같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중이다. 앞으로도 그럴것 같아서.
지인들을 혹은 친구들을 통째로 일 카테고리에 넣기로 한 데에는 사실 나 자신의 문제가 큰 몫을 한다. 최근 반년간의 나는 취향도, 자기 삶도, 퇴근 후의 일상도, 좋아하는 것도, 즐기는 것도 희미한 그야말로 기계같은 인생을 살고 있어 친구들과 만나도 할 말이라는게 없다. 가벼운 화제거리가 없는 사람은 결국 남의 뒷담화나 하게 되는 것이니, 평판이 중요하고 오늘 한 말이 두시간이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이 동네에서 나같은 사람은 나 뿐 아니라 나를 만나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친구를 만들 수 없는 것이다. 뭐, 뮤지컬 보러 다니고, 스페인 순례길로 훌쩍 떠나고, 눈을 보러 제주에 가고, 취미겸 약과 클래스를 다니고, 바다를 보러 코사무이로 가는 그런 삶을 부러워한다. 좋아하는 삶이다. 충분히 즐기기도 했다. 사실 지난 6년간 몰입했던 것이었다. indulgence.
어느 정도였냐하면 스스로를 돌아보며 무의미하게 시간과 돈을 쓰는구나, 나는 이렇게 부유하는구나 생각하던 차였다. 그러던 차에 예기치 못하게 바닥에 떨구어져 일로 내몰렸지. 주7일인 지금의 일상이 무리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장기 휴가를 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무리한 일정이 아니라 정신을 빼놓고 지껄이고 행동하는 인간들이지. 하나같이 박사 졸업장들은 어디 시골 장터에서 사온 것처럼 구는 사람들. 일로만 치자면 일하는 것의 기쁨을 안다. 성과가 좀처럼 나오지 않아 문제일 뿐이지. 중언부언했지만 결국 일이나 해야 할 때고, 일이나 하고 있다. 사람들은 무슨, 만나서 무슨 전환과 위로와 격려가 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씩, 일 상관없이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약속을 만들어 나올 때면, 오랜만이기 때문에 기대치도 높다. 맛있는 것 먹고 싶다. 좋은것 먹고 싶다. 그런 기대치. 얼마나 사람들 만나는게 고역이면 아무리 맛있는 집을 가도 돌씹는 것 같은 식사 투성이인데, 하필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같이 가서 맛있는것 먹으려는 기대를 실망시키는 음식이 나오면 매우매우매우 분노하게 되는것이다. 이를테면 이 정체를 알수 없는 해산물 타르타르 덮밥집같은. 우니가 쓰면 쓰지를 말 것을.
그리고 이런 집도. 스시집에 제일 기억나는 메뉴가 유자 셔벗이니 말 다했다. 이집도 우니 썼던것 같아.. 결정적으로 스시 잡는법 알려준답시고 게스트 접시에 스시를 놨다가 밥알을 흩었다가 그걸 또 손으로 치웠다가, 결정적으로 접시를 안 갈아주는 것을 보고 다시는 안오기로 결심.
그런가 하면 사람들도 좋고 음식도 맛있으면 내가 못먹지.. 풍기 피자가 매우 맛있다 한다. 맛있으면 뭘하나, 스트레스성 급성 장염덕에 구경만 한 것을. 지지난주는 강제 페스카테리언이었고 지난주는 강제 락토오보였다. 이번주는 강제 비건이었으니 다음주쯤엔 뭐가 되려나. 나한테 스트레스성 급성 "장염"같은 게 오다니. 난 아무리 스트레스받아도 성인병 종류 그러니까 고혈압이나 중풍 뭐 그런걸로 쓰러질 줄 알았다. 아무튼 결론은 그렇다,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맛있는 집에 가자. 싫어하는 사람들과도 (하등 아무짝에도 쓸모없겠지만) 되도록 맛있는 집에 가자.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좋은 시간 보내야 하니까. 싫어하는 인간들하고는 맛있는거라도 먹어야 보상이 되니까. 심지어 요즘 약해지는 위장상태로는 맛집 가도 마음껏 먹지도 못하니까.
출석하는 교회가 해방 직후 부통령도 출석할 정도로 꽤 유서깊은 곳인데 처음 듣고는 이단인줄 알았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본래 아는 만큼 말하는 법이니 신경을 쓰진 않는데, 그걸 자랑스럽게 말하는 꼴은 참 한심스럽다. 어차피 안믿는 사람들한텐 너나 나나 똑같이 개독으로 보일것을.. 특히 그들이 우리보고 개독이라고 부르는 건 니들이 다니는 그 교회들 덕인것을.. 요즘 모 영화덕에 배신감을 느끼는 이들이 속출한다는 교회들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 하나를 방문했다. 나같은 사람은 그들의 정통 신앙의 성지에 발을 들이는 즉시 자동발화되어 몸이라도 활활 불탈 줄 알았더니 사지멀쩡하다. 나보고 이단이라고 한 정통 신자들의 통찰력에 문제가 있던지, 상종못할 이단을 즉시 골라내어 쫓아내지 못하는 이 교회 성도들 영발에 문제가 있던지, 아무튼 둘 중 하나는 문제가 있는건데 과연 누구일까. 복도를 바쁘게 다니는 비슷하게 생긴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실없는 생각을 좀 해봤다.